[편집국에서] 美·中은 자국 기업 보호에 열 올리는데…

입력 2018-06-20 17:29  

소득주도성장 후폭풍에 고용지표 '최악'
벤처 창업만으론 한계…규제완화 절실

양준영 산업부 차장



[ 양준영 기자 ] 중국은 모바일 결제 세계 1위 국가다. 길거리 노점에서도 스마트폰 QR코드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 거지까지 모바일로 구걸에 나설 정도다. 중국이 모바일 결제 강국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낮은 신용카드 보급률 덕분이었다. 차량공유 서비스 그랩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핫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중 한 곳이다. 8개국 217개 도시에서 서비스하는 ‘동남아의 우버’다. 몸값이 60억달러에 달하는 그랩의 창업 동기는 열악한 교통환경 개선이었다. 불편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모바일과 만나 꽃을 피운 사례다.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이 ‘카드 강국’이 아니었다면 모바일 금융강국이 됐을까. 서울의 교통환경이 열악했다면 우버나 그랩 서비스가 가능했을까.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 가운데 밀려나 있던 혁신성장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몰고온 후폭풍으로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데 따른 것이다. 고용환경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로 떨어졌고, 반도체를 빼면 기업 실적은 마이너스다. 정부는 늦게나마 혁신성장에 힘을 싣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인과 경제단체장을 잇따라 만나고 있고 태스크포스(TF)인 혁신성장본부도 꾸리기로 했다. 드론, 스마트공장, 미래자동차 등 8대 핵심 선도사업 활성화도 추진한다.

문제는 혁신성장의 내용이다. 정부는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을 혁신성장의 주축으로 꼽고 있다. 대기업은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하지만 정부가 자금을 쏟아부어 벤처 창업을 늘려도 일자리 창출엔 한계가 있다. 경제 기여도가 큰 대기업을 빼고 혁신성장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혁신 하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 시장을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을 떠올리지만, 기존 제품을 개선하고 고도화하는 ‘점진적 혁신’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제조업은 혁신성장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같은 스마트기술을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활성화에도 대기업의 역할은 중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들은 수익을 내서 부를 쌓기보다는 잠재적 가치를 대기업에 팔아 몸값을 높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같은 친노동 정책을 쏟아내고 대기업에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고 압박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기업인들은 본연의 경영 활동에 집중할 틈이 없었다. 지난 정부에서도 ‘전봇대’니 ‘손톱 밑 가시’ 등의 수사를 동원하며 규제 혁파를 공언했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쳤다. 혁신성장이 ‘창조경제 데자뷔’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기업 임원은 “중국과 미국은 무역전쟁까지 불사하며 자국 기업 보호에 열을 올리는데, 우리 정부는 기업을 적폐 대상으로 보고 규제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은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등 불공정 행위도 엄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 기업들은 훨씬 더 가파르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자본도, 기술도 없었던 우리 기업들은 불리함을 극복하고 성장신화를 이뤄냈다. 글로벌 시장에서 싸우는 대표선수들을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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